2008년 03월 04일
틈새
창문 가득 물방울이 맺혀 있다. 비가 내리는 줄 알았다. 다시 보니 정지해 있다. 먼지묻은 걸레로 닦은 탓인지, 더러운 흙탕물이 맺혔던 흔적인지, 검은 점들이 흐르다 멈춰 있다. 멀리 창문 건너로 보이는 것은 학교 본부 건물이다. 흐린 갈색 벽면은 역시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다. 이따금, 수십 개의 창문들에서 사람의 모습이 언뜻 비치기도 한다. 커튼을 쳐 놓은 곳들은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갑작스럽게 눈이 며칠 내리고 난 다음 겨울은 사라져버렸다. 아직 봄은 아니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시간. 그 틈새를 들여다보는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서관 안은 조용하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나 연습장을 찢는 소리가 간혹 들린다.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머리를 처박은 채 책 안으로 파고들어가 잠자듯 숨쉬고 있다. 뱉은 숨들로 실내의 공기가 탁하다. 빼곡한데도 그들은 여기에 없다.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나 같은 사람만 남아 있다.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숨죽였던 겨울이 쿨럭거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창문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는 땟국물 자국뿐이다. 여기 하늘은 흐리지만 아직 푸르다. 또 다시, 그 틈새.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잘린 머리카락이 너덧 개 붙어 있었다. 충분히 털어내 주지 않았다. 아침의 미용사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멀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플라스틱 망토 따위를 걸치고 있었다. 흰 천을 덮은 유리병위에 계란껍질을 얹은 모양의 인형이 생각났다. 미용사가 집게 핀으로 내 머리카락을 고정시킬 때마다 얼굴이 드러났다. 입 옆에는 흐린 주름이 있었다. 미용사는 미동도 없는 내 주위를 기이한 자세로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곤두세운 신경이 손끝에서 엷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위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눈발이 날리고 있다. 사선을 그으며 떨어져 내리는 굵은 먼지 덩어리들. 공기가 질퍽해 졌다. 쏟아지는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철푸덕거렸다.
# by | 2008/03/04 12:21 | 멍멍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